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따뜻한 날이었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른 데다, 꾀꼬리들이 온통 날아들어 지저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딱 하나, 꽃이 만발할 때 혼례를 치르면 좋으련만, 하고 친척 부인들이 고운 입가를 옷소매로 가리고 안타까워했다.

“신부가 아리따우니 되었지요.”

문풍지 사이로 들려온 말에 사모관대를 쓴 어린 신랑은 꽤 의젓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수발을 들던 시동이 빙글빙글 웃음을 띠었다.

“네에, 물론 도련님 마음속엔 오월마냥 꽃이 가득 피었으니, 걱정 없고 말고요.”

어린 신랑, 주은찬은 약간 쑥쓰러운 얼굴로 흉배에 새겨진 선학 자수를 어루만졌다. 흑단나무에 자개와 옥을 박아넣은 허릿대, 그리고 상투를 틀어 머리 위에 얹은 사모가 영 어색했다. 주먹을 꼭 쥔 양 손에는 땀이 그득 차 있었다. 오늘 혼례를 치른다니, 이렇게 성장을 하고 앉아 있는데도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난 두 달 간의 일들이 하나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청룡 가문에서 혼담이 들어왔소.’

‘네에?’

어머니와 자신을 앉혀두고 아버지는 그런 얘기를 했다. 어머니는 아연실색해서 말했다.

‘그 댁은 손이라곤 여식 하나뿐인데, 은찬이에게 시집을 보내겠다니요?’

설마 우리 은찬이를 데릴사위로 들이겠다는 건 아닐 테고요! 그러자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은찬이는 하나뿐인 내 아들인데 대체 어디로 보낸다는 말이오. 주은찬은 아버지의 말투와 표정에서 어느 정도 이미 짐작을 했다. 어머니와 단둘이 말씀하시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이렇게 불러다 앉혀 놓을 정도라면 아버지의 마음 속에서는 이미 이 혼담이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머니도 곧 그걸 알아챘는지, ‘아이 참, 당신도. 이런 중대사에도 매번 내게 상의 한 마디 없이…,’ 라고 한탄했다. 그러나 곧 어머니는 늘 그렇듯이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당신이 단번에 수락하겠다는 걸 보니, 그 아가씨가 아주 훌륭한 신붓감인가 보지요.’

주은찬은 내내 긴장한 얼굴로 무릎꿇고 앉아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몇 마디를 더 주고받았고, 그렇게 혼사는 결정되었다.

연지곤지를 찍은 각시님의 얼굴을 보고 주은찬은 절로 빨갛게 달아오르려는 얼굴을 숨겼다. 양 볼은 도화빛이고, 매끈한 콧망울이 마치 선녀 같았다. 열아홉 폭짜리 원삼 활옷을 입은 모습이 어찌나 어여쁜지. 몇 번이고 맞절을 하고 합환주를 나누어 마시는 동안, 주은찬의 발은 저 구름 위를 둥실 둥실 떠가는 듯했다.

“신방으로 드시지요.”

페백을 할 때에도 신부는 양 소매를 코밑으로 올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대추와 밤을 던져 주실 때 딱 한 번 제대로 얼굴을 보았는데, 정말이지 하마터면 부모님 앞에서 넋을 홀라당 뺏기는 추태를 보일 뻔했었다. 주은찬은 문지방 앞에 서서 쿵쿵대는 가슴을 가라앉히느라 몇 번이고 숨을 내뱉었다.

끼익.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문 여는 소리가 왜 유독 그리도 크게 들리는지. 가까스로 가라앉혔던 가슴이 또 두방망이질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모란 병풍과, 나비 바람막이 촛대, 그리고 여전히 활옷을 입고 등진 채 앉아있는 신부가 차례대로 눈에 들어왔다. 주은찬은 침을 꿀꺽 삼키고 방 안으로 버선발을 내딛었다.

“많이…, 피곤하시지요, 부인.”

주은찬은 어렵사리 첫마디를 꺼내며 보료 위에 앉으려고 했다. 그러나 막 얼굴이 보이려는 찰나에 신부는 또 슬그머니 고개를 피했다. 앞으로 시간은 많을 테니까. 주은찬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우선 머리 위로 손을 뻗어 자신의 사모부터 벗었다. 바로 곁에 있는 반닫이 위에 사모를 내려놓고 다시 신부 쪽을 흘끗하자, 신부는 화려한 자수 띠를 드리운 비녀 두 개, 커다란 가체, 떨잠, 뒤꽂이들을 빼내느라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주은찬은 자신도 모르게 웃으며 말을 붙였다.

“제가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나 신부는 방석을 깔고 앉아 있던 자리에서 화다다닥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주은찬은 뻗었던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 주은찬의 나이가 올해 벌써 열 셋. 남녀상열지사가 무엇인지는 이제 대충 알고 있지만, 신부는 이제 겨우 열한 살이라고 들은 바였다. 너무 긴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대로는 주무시기 불편할 테니 그럽니다. 아무리 훌륭한 자수가 놓인 보료라지만 산호 떨잠이 가체에 가득 꽂힌 채로는 도통 누워 잠드실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

신부가 뭐라고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댔다. 주은찬은 살짝 몸을 숙여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신부는 한층 더 몸을 빼며 피하려 들었다.

“얼굴도 보고 싶습니다. 종일 한 번밖에 보여주질 않으셨습니다. 오늘은 평생에 한 번 뿐인 첫날밤이 아닙니까.”

주은찬은 부드러운 말씨로 어르고 달랬다. 어린 친척 여동생부터 여종의 딸까지, 살살 위로해주는 데는 이미 다양한 경험을 통해 도통한 바였다. 마침내 신부가 조금 조금씩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소맷자락을 내리기 시작했다.

신방을 환히 밝히고 있는 화촉이 설마 내 눈을 멀게 했나.

월궁항아와도 같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앉아 있었다. 유달리 옅은 빛깔의 머리카락과 진홍 마노를 박아 넣은 듯한 두 눈동자. 주은찬은 자신도 모르게 신부의 두 손을 맞잡고 입을 맞추었다. 곱게 연지를 바른 입술은 그대로 사르르 녹을 것처럼 달콤했다. 신부가 두 눈을 커다랗게 뜨는 게 느껴졌다. 주은찬은 한참 후에 입술을 떼었다. 신부는 양 귓불까지 발갛게 되어서 주은찬을 차마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름자가 무어라 하였지요, 각시님?”

주은찬은 마주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재촉해 물었다. 신부는 커다란 눈을 몇 번이고 깜박였다. 그러다가 질문을 받은 것을 깨달았는지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이듯 대답했다.

“이름자도 어여쁘십니다.”

주은찬은 조그만 신부의 손을 더 힘주어 잡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사붓한 어깨를 살그머니 잡아 당겼을 때, 비로소 신부는 주은찬의 품으로 끌려왔다. 신부에게서는 정말로 복숭아꽃처럼 달큰한 향기가 났다. 아직 화촉도 꺼지지 않은 신방, 주은찬은 얼굴에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채 피지도 않은 벚꽃잎이 벌써부터 나뭇가지에서 흩날려 내려오는 듯한, 삼월의 이튿날 밤이었다.

Posted by 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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